文정부 노인 일자리 사업, 80만 개 목표 달성
“사람 만나 살맛 난다”는 사업 참여자
“노인 빈곤 해결 기여하지만 질 제고해야”
고용률 높이기 위한 꼼수?
전문가 “일자리 기능은 금전뿐 아니라 성취감”
2021년 11월 29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에서 열린 ‘제10회 수원시 노인일자리채용한마당’에서 시민들이 채용게시판을 확인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하는 고(故) 이순자 작가의 논픽션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최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상에서 화제가 됐다. 이 글을 끝으로 고인이 된 작가의 이야기에 누리꾼들은 애도를 보냈다. 글의 내용이 시사하는 바도 컸다. ‘분투기’에 걸맞은 한 노인의 직장 구하기 여정이 담겼다. 그는 수건 개기, 마트 청소, 아기 돌봄 등 각종 일자리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고령층이 처한 노동 현실이 드러난다.
2018년 2월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노인 일자리 80만 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021년 11월 28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사업(노인 일자리 사업)’ 계획에 따르면 2022년 정부가 계획한 일자리 개수는 84만5000개다. 목표를 이미 달성한 셈이다. 그렇다면 늘어난 일자리로 인해 노인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해고당해도 다시 일자리 연결해 줘”
2021년 1월 13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복지고용플러스센터에서 한 어르신이 구인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고령층에 제공되는 일자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최씨의 일자리는 지역사회 공익 증진을 위한 ‘공익활동’ 일자리에 포함된다. 월 59만4000원을 받는 ‘사회서비스형’, 임금 수준이 높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민간형’이 나머지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김모(65) 씨는 2년 넘게 민간형 일자리를 신청해 일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이다. 일주일에 5일, 하루 7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약 160만 원을 받는다. 일본에서 오래 거주한 경험이 있다는 김씨는 “일본이 고령화 사회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지자체가 직접 일자리를 연결해 주는 제도는 보지 못했다”며 “만약 해고돼도 다시 일자리를 연결해 준다고 하더라”라고 호평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2021년 1월 25일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표한 ‘2020년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6.9%가 노인 일자리 제공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기 알바’ 질적 측면 개선해야”
정부가 적극적인 일자리 만들기에 나선 것은 한국의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기준 노인빈곤율은 4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가장 높았다. 미국(23.1%)·일본(19.6%)·영국(14.9%)와 비교해 보면 압도적인 수치다. 여기에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부실한 노후보장 제도를 고려해 보면 소득을 일부 보전해 주는 노인 일자리 사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박경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연구조사센터장도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한 고령층 수만큼의 일자리를 민간 영역에서 만들어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이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사회보장 제도가 부실한 한국은 공공 일자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일자리의 질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1년 8월 발표한 ‘2021 국정감사 이슈분석’을 통해 “노인 일자리 사업이 노인의 소득 개선을 통한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사회관계를 개선해 정서적 고립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노인 일자리 대부분이 월 27만 원을 받는 공익활동으로 ‘단기 알바’에 그치고 있어 일자리의 질적 측면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2022년 정부가 계획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 84만5000개 중 공익활동이 60만8000개로 전체 72.0%에 해당한다. 여기에 공익활동 시간을 두 배 늘린 것과 다름없는 사회서비스형을 포함하면 약 80%의 일자리가 용돈벌이나 소득 보전용 ‘단기 알바’에 가깝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 노인 일자리에 대한 투자가 고용률을 수치상만 높이려는 수단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 일자리가 늘면서 노인 고용률은 상승 추세다. 2021년 9월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고령자(65세 이상) 고용률은 2017년 30.6%에서 2020년 34.1%로 높아졌다.
반면 15세 이상 주 40시간 노동시간을 ‘취업자 1명’으로 파악하는 ‘풀타임 환산 고용률(FTE)’은 감소 추세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실이 통계청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0년 FTE는 58.6%를 기록해 2017년(65.1%)보다 6.5%포인트 감소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낮아진 청년 고용률을 감추기 위한 꼼수”라며 “공공 일자리 개수만 늘리는 정책으로는 다가올 초고령 사회를 대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적성을 살려 성취감 느끼게 해줘야”
전문가들은 노인 일자리 사업의 지속성을 위해 질적 측면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자리의 기능은 수입을 얻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적성을 살려 성취감을 느끼는 데 있다”며 “아르바이트 성격의 공공 일자리는 저소득 노인층에게 잠시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고령층의 적성과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박 센터장은 미국의 ‘시셉(SCSEP·Senior Community Service Employ-ment Program)’ 사례를 소개했다. 시셉은 1965년부터 진행된 저소득 고령층을 대상으로 취업 상담 및 알선 직업훈련은 물론 이력서 작성 등을 도와주는 고용 프로그램이다.
박 센터장은 “우리로 따지면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가 협업해 만든 프로그램으로 한국 일자리 정책보다 교육과 취업이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며 “참여하는 노인들의 적성과 취향을 살릴 수 있는 만큼 이들의 근로 의욕도 더 커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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